네임버스 AU를 반도리 컾들로

아 제목 대체 뭐라고해야하지 CP비빔밥?

* 세계관과 설정이 지맘대로 *

* 히나아야, 이브마야, 유키리사, 미사카논, 타에사야, 토모히마&모카란, 츠구사요 *




1.


날이 하루가 지날수록 무더워졌다. 히나는 최근 욕실에서 살다시피 하고 있다. 오래 씻으면 거실 공기까지 눅눅해진다는 사요의 핀잔에도 그 때에만 수그러들었다가 또 샤워를 하러 들어가곤 했다. 계속 찬 물만 끼얹다가, 도저히 안 되겠어서 꼼꼼히 비누칠을 하던 히나의 시야에 낯선 글자가 들어왔다. 

언제 생겼는지 모르겠는 글씨는 작고 동글동글했다. 하필 생겨난 곳이 팔의 뒤편이다. 좀 자세히 보려면 팔을 바짝 들고 돌려 봐야 했다. 그렇게 해도 거꾸로 뒤집어져 보였다. 

"뭐라고 적혀 있어?"

"제대로 안 보여...얘, 조금 더 들어. 애당초 이 정도 위치는 보이잖니?"

"거꾸로 보여서 헷갈린단 말이야-"

그러니 다른 사람이 읽어줘야 하지 않겠는가! 히나는 생글생글 웃으며 팔을 조금 더 높이 들어올렸다. 사요는 한숨을 쉬며 눈을 가늘게 떴다.

"...아야."

"음, 그거 비명?"

"라고 적혀있어. 성도 없고. 얼굴이랑 하트도 그려져 있는데. 아, 얼굴에 리본이 달려있네. 글자랑 이어져 있어. 표정은 윙크를 하는 표정이야."

맥락 없는 설명이었지만 아야는 금방 알아듣고 눈을 반짝였다. 끙끙대며 거꾸로 보느라 애썼던 그림의 퍼즐이 맞춰지는 것 같았다.

"그거 룽- 하네!"

"글쎄... 자기 이름에 그림을 그릴 정도로 어린 나이인거 아닐까."

아이돌의 사인 같은 문화에 어두운건 둘 다 같았으므로 반박을 해줄 사람도 없었다. 히나는 고개를 돌려 제 팔을 다시 쳐다보았다. 반절밖에 보이지 않았다. 괜히 글씨를 문질러보다가 가볍게 웃었다. 글쎄. 어리진 않을 것 같아. 이어 지나가듯 말했다. 어딘가 깔끔해 보이는 게, 많이 써 본 것 같은 느낌이야. 한번 그리고 말 그림 같진 않아.

"그럼 굳이 그림을 왜 그리지."

"이쪽이 더 동글동글하고 보들보들하니까 그런 거 아닐까? 으음... 그럼 그 애는 어떻게 새겨져 있을까, 응? 언니? 나는 하트는 별로니까... 아, 해는 어때? 그 애는 해가 그려져 있고."

그게 대체 무슨 상관이니. 상대가 히나와 잘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다가 사요는 급하게 고개를 저었다. 이런 애는 한명이면 족하지. 


그 사람이 사요와도, 히나와도 결이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 건 조금 나중의 일이다. 




2. 


장갑을 벗던 야마토 마야는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왼쪽으로 기우뚱. 약간 아프니까 반대쪽으로도 한 번 기우뚱.

평소에 메모를 좀 두서없이 하는 편이긴 하다. 양 손으로 기재를 만지작거리고 있어야 하는데 여유롭게 수첩 같은 걸 들기가 어려웠던 탓이다. 정말 어떨때는 급하게 팔을 걷어서 볼펜으로 팔에 기재명을 적어놓은 적도 있다. 과하게 열정적인 거 아니야? 누군가가 악의없이 찔러도 마야는 난감하게 웃었다. 이상한 버릇은 괜찮은 버릇보다 유난히 고치기가 어렵곤 하다. 그런 걸 보면 실은 본질이 못된 사람일지도 모르겠다고, 자연스럽게 또 자신을 한 계단 낮춰두는 거다. 버릇처럼.

하여튼 쓴 기억이 없는 메모가 손등에 가지런히 적혀 있었다. 일을 할땐 장갑을 껴야 하므로 굳이 장갑을 반쯤 벗어야 보이는 위치에 뭘 적어두는 게 더 부자연스럽다. 게다가 문체도 마야의 것이 아니었다. 이게 그 미신처럼 돌던 그건가? 거기까지 생각하는 게 평범한 사람보다 못해도 세박자는 느렸다.

"근데 이건 영어잖습니까."

허탈한 목소리로 마야가 중얼거렸다. 가지런하고 유려한 필기체는 읽기 어렵지 않았다. 스치듯 보면 패션의 용도로 새긴 것 같아보이기도 했다. 이브. 예쁜 이름에 약간 관심이 쏠렸지만 그뿐이었다. 미신에는 확률이라는 게 없다. 과학적인 증거도 법칙도 없다. 어차피 장갑을 끼면 보이지도 않는다. 마야는 장갑을 다시 끼우며 안경을 고쳐썼다.


"마야 씨는 항상 프로페셔널 해요!"

"아하하, 그렇습니까?"

"네! 늘 작업복을 고집하는 것도, 어느때나 검을 몸에서 떨어트리지 않는 무사의 마음이겠죠?"

아니 그럴리가 없잖아요? 마야는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왼쪽 장갑이 벗겨질 새라 주먹을 세게 그러쥐었다. 가뜩이나 땀도 많은 편인데 죽을 맛이다. 

손등의 이름은 조금 줄이 맞지 않는 가타카나로 바뀐지 오래다.




3.


"문신을 지우고 싶은데요."

소중한 가족의 이름인데, 생각해보니까 너무 부담을 주는 건 아닐까 싶어서요. 여자는 최근 들은 것 중 가장 그럴듯한 핑계라고 생각한다. 이 예고없이 새겨지는 불청객을 지우러 오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다. 아무 말을 하지 않는 손님도 있고 구구절절 사랑 이야기를 풀어놓는 손님도 있다. 이 손님은 세번째 경우고.

어쨌든 잘 안 지워지실 수 있어요. 원래 문신도 잘 못 지우는데 이런건 오죽하겠어요. 골백번도 했던 주의사항을 읊었지만 듣는 사람이나 말하는 사람이나 귀담아듣지는 않았다. 묵묵히 새겨진 위치를 짚어줄 뿐이었다. 

약간 숱이 많은 머리카락들을 걷어올리니 등에 세로로 곱게 새겨진 이름이 한 눈에 들어왔다. 사실 한 눈에 들어가기 버거울 정도로 컸다. 여자는 조금 당황한다. 지금껏 업소를 찾아온 손님 중 이렇게 큼지막히 쓰인 이름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이름의 크기가 애정의 크기와 비례하지는 않겠지만 괜히 연관짓고 싶을 정도였다. 

안 될까요? 조금 떨려 오는 손님의 물음에 여자는 한숨을 참았다. 해 봐야 알 것 같네요. 어지간하면 해보고 싶지 않다는 말도 같이 참았다. 

이름의 한자가 예쁘다는 생각 정도는 무례한 범위에 안 들지 않을까? 여자는 손님의 등에 손을 올렸다.


미나토 유키나는 아무런 이름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작게라도 있나 싶었는데 없었다. 본인은 그걸 찾을 의지조차 없어서, 그걸 찾아보러 같이 병원에도 가봤다. 아주 가끔 몸 속에 새겨지는 사람도 있다고는 했다. 그런 우연에 기대기에는 이미 너무 지쳐버렸다.

사람이 꼭 사람을 사랑할 필요가 있을까. 운명이 없나 보지.

말 자체는 맞는 말이었지만 듣는 사람을 잘 못 골랐다. 

"그렇지?"

말하는 사람은 이런 식의 관계가 존재한다는 것 조차도 모를 것이다. 


작은 방에선 대책없이 큰 글자를 어떻게 가릴지 진땀을 빼는 여자만 분주했다. 




4.


카논 선배에게 주어진 이름은 선배에게 드럼을 가르쳐 주었던 어느 음악학원의 선생님이었다고 했다. 동네의 격식 없는 작은 학원. 당시 선배는 중학생이었으며 그 선생은 알바를 하던 대학생이었다. 긴 생머리와 큰 키가 멋있어서 처음 배울 때엔 아주 열심히었다는데... 그 뒤의 이야기는 내가 안 들었다. 어쨌든 지금은 없는 사람. 그냥 그랬었지, 하고 흘려 이야기하는 것 치고는 꽤나 세세한 설명이라 나는 무너져 내렸다.

선배는 허리부근에 새겨진 이름을 이런 저런 것들로 가리고 다녔다. 주로 잘라 쓰는 밴드나 파스여서 바보 3인방들은 연습이 과했냐며 잊을 때마다 큰 소리로 걱정을 해 내 복장을 뒤집어놨다. 그걸 아는 사람은 일단 나뿐이다. 그나저나 이 정도로 티를 내면 알 법도 한데 그 셋은 정말 모르는 건지. 이제와서 남의 눈치에 대해 걱정한다고 내 기분이 나아질 것도 아니면서.

"우리 둘 다 서로만 아는게 하나씩 있는거네?"

난감하다는 듯이 웃다가도 눈이 마주치면 다른 얼굴로 웃어주었다. 툭 치면 들통날 것도 비밀이라고 할 수 있을까. 물론 겉으론 고개를 무조건 끄덕인다.


내게 새겨진 이름은 살면서 한 번도 본 적도 들은적도 없는 사람의 이름이다. 가끔은 아무렇지 않게 여겼던 과거의 내가 얄미울 지경이다. 지금은 이걸 운명이라고 붙여준 게 누군진 모르겠지만 앞으로도 알고 싶지가 않았다. 살다 보면 만날 수 있을거야. 너처럼 좋은 사람일거야. 선배는 다정하게 다독여주었다. 나는 그 잠깐 어깨에 닿았던 손길만으로도 꽤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인데 말이다. 

어차피 나는 지금도 오쿠사와 미사키가 아닌 미셸인데, 또 다른 이름을 하나 더 가지면 안될까요. 오쿠사와 미사키가 아니라 그 사람의 이름을 대신 받을 순 없을까요. 생판 모르는 사람의 이름을 가진 나는 핼로 해피 월드의 오쿠사와 미사키처럼 존재감 없이.

"미사키? 지쳐보이는데 괜찮아? 많이 덥지...탈 잠깐 벗을래?"

그렇게는 안 된다. 내가 나인지 알고 있는 선배이기에 못 될 것이다. 

인형옷을 완전히 벗으면서 버릇처럼 발목을 어루만졌다. 땀에 절은 밴드의 촉감은 늘 불편하다. 찝찝한데 선배는 잘도 참는다. 가끔... 부럽다.




5.


"사아야는 글씨 예쁘네."

이건 어디를 돌린 건지 모를 정도다. 아무리 좋게 해석해줘도 그냥 생 직구 아닌가? 사아야는 땀을 뻘뻘 흘린다. 타에의 시선은 사아야의 노트가 아닌 제 손목에 놓여 있었다. 내가 언제 저 애 손목에 내 이름을 적어뒀더라. 그 짧은 정적이 농담이나 꿈이었다면 훨씬 나았을 테다.

"전엔 없었지 않아..?"

"갑자기 생겼는데. 놀랐어. 꼭 산타 같아. 여름이지만."

말 한 마디 한 마디 사이의 여백이 너무 큰 건 반년 정도로는 적응이 안 되나 보다. 사아야는 포기한 얼굴로 조금 웃었다. 이런 상황에서 웃을 수 있는건 그냥 사아야의 생활이 늘 그랬고, 지금 당장도 이러고 있으며, 앞으로도 이럴 것인 덕분이었다. 

"싫지 않다면 다행이네."

"왜 싫어? 사아야는 싫을 것 같아?"

"아니. 그런 이야기는 아니었어."

"그럼 좋아. 나는 토끼 이름이 생길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럼 스무 개 생겼을까?"

"조, 조금 징그러울지도-"

타에는 연신 신기하다는 듯이 제 손목을 보고 있었다. 사아야는 조금 튀어나오려는 물음을 참았다. 너 진짜 토끼 좋아하는구나. 그게 사아야가 타인을 찌를 수 있는 최대한의 날카로움이었다. 생채기도 안 날 수준의. 


사람을 대할때엔 일종의 법칙이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냥한 사람을 좋아했고 부탁을 잘 들어주면 조금 더 편해했다. 이런 반응에는 이렇게, 하는 정석이 있었다. 사아야는 어렸을 때 부터 그런 도식을 파악하는 게 빨랐다. 그리고 타에는 그런 게 전혀 존재하질 않는 사람이었다. 수많은 경우의 수를 몇 천만분의 일로 모조리 피해가는 사람. 그리고 그 사람의 이름은 사아야의 발등에 약간 뻔뻔하게 새겨져 있었다.

"나는 사아야면 좋아."

지금 이 말도 그간 사아야가 경험으로 쌓아온 관계의 어느 것에도 포함되지 않는 종류의 것이다. 얼핏 들으면 자주 듣는 말과 비슷한데 결이 달랐다. 뭐가 좋아? 토끼 같은거야? 내가 지금 어디다가 질투를 하는 거람? 

그 수많은 확률을 또 피하고 피해서, 몇 년이나 타에의 이름을 가지고 있었던 사아야에게.




6.


뭐든지 강 건너 불구경이 제일 재미있다. 그리고 아오바 모카는 그걸 위해서라면 망원경 정도는 가뿐히 살 정도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더워..."

"안 됩니다 토모에씨-"

기껏 알려줬더니-! 모카의 투덜거림에 토모에는 끙 앓는 소리를 냈다. 이 더위에 그 긴머리를 걷지도 못하고 있었다. 연신 돌아가는 선풍기의 머리에 따라가던 고개가 우뚝 멈추었다.

"안 되겠어. 화장실에 가서 묶고 올 테니까! 적당히 둘러대 줘!"

"헤, 가릴 건 있어?"

"땀 때문에 찝찝하지만 낫겠지."


토모에의 이름을 가장 먼저 발견한건 애석하게도 모카였다. 중2 겨울 즈음이었을까. 한창 밴드 연습이 끝나고 덥다며 겉옷을 벗어던지는 토모에의 목덜미에는 앞으로 평생을 놀려먹을만한 이름이 적혀 있었다. 발견한 직후부터 질질 끌며 놀리고 싶었지만 아무리 모카라도 나름대로의 선은 지켰다. 

"이 위치면 평생 네 눈으로는 못 보겠는데-"

"그야 그렇겠지만, 누군데? 내가 아는 사람이야?"

"알다마다...같은 밴드 멤버를 모르면 안 되잖아~"

모카는 느릿하게 머리를 굴렸다. 우리 밴드에서 드럼을 담당하시는 분이 유독, 본인이 자각을 하지 못하는 범위에서 너무 둔하단 말이지. 이름을 듣고 당황하던 토모에에게 맞춰진 초점은 정답이 아니었단 얘기다. 

"역시 가려야겠지."
"애절한 짝사랑을~?"

"그런거 아니라니까. 같이 몇 년을 보낸 단짝친구에 같은 밴드도 하고 있는데, 이런 걸 들키면 의식되니까 어색해질지도 모르잖아. 하필 모카한테 들켜서..."

그렇지만 오히려 너라서 다행일지도. 그 날부터 토모에는 머리를 기르기 시작했다. 너무 긴데 묶지 않는 것도 그것 나름대로 어색하니까 적당히 하는 게 좋은데. 둔한데다 적당히도 모르는 소꿉친구라니, 모카쨩은 운이 없어도 너무 없어-

중얼거림은 아무도 없는 연습실 안에 떠돌지도 못하고 가라앉았다. 날이 덥긴 했다. 모카는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다가 익숙하게 작은 꽁지머리를 만들어 묶어 올렸다. 토모에와 같은 위치에,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 처음부터 모카는 강 건너에서 구경하는 역할도 아니었으니까. 타느라 뜨겁네, 우리 밴드. 




7.


연애를 시작하고 몇 개월동안 조금씩 기존의 거리에서 가까워지는 과정에서 둘은 은연중에 알아챘다. 두 사람 모두 아무런 이름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건 정작 본인들은 몰랐던 거였다.


"...선천적으로 이름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열 명 당 일곱 명 꼴이고, 후천적으로 생기는 사람이 두 명 이면, 아무 이름 없이 평생을 살아가는 사람은 한 명이라고 해요. 이 통계는 5년동안 집계한 결과라고 하네요."

츠구미는 활자를 소리내어 읽는 것을 좋아했고 사요는 라디오 같이 잡다한 정보를 담은 목소리를 듣는 것을 좋아했다. 지금도 츠구미는 아이패드를 펼쳐놓고 기사를 읽는 중이었다.

"사랑의 개념이 여전히 이성애에 치중되어있는 사회의 인식도 어느정도 결과에 기여하고 있으며... 30년 전에 비슷한 통계를 냈었는데, 이 때는 2년동안 집계했었네요. 훨씬 많은 사람들이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고 해요."

사요는 그런가요. 음. 같은 추임새를 넣어가며 커피잔을 만지작거렸다. 밖에는 비가 조금씩 내리고 있었다. 가끔씩 사요의 신경이 바깥으로 쏠렸다. 비가 더 거세져서 번개나 천둥이 친다면 바로 가려줄 수 있도록 테이블 한 쪽으로 뻗은 팔이 저려왔다. 물론 애써 내색하진 않았다. 그냥, 둘은 늘 그랬다.

"제가 너무 집중하고 있었나요...?"

사요는 멍하니 고개를 돌렸다. 츠구미가 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아무런 대화 없이 앉아있는지도 제법 되었다. 비가 좀 멎으면 돌아간다는 핑계로 반쯤 쉬고 있는 카페에 들어온 것은 사요였지만 눈치를 보고 있는 것은 츠구미다.

"아니요. 잘 듣고 있었어요. 저는 역시 츠구미씨의 목소리를 좋아하는 것 같네요."

"기사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걸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나. 사요는 방금 들은 내용에 대해 곰곰히 떠올려본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그런 걸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기억할 수는 없었지만 띄엄띄엄 기억은 났다. 

"신경쓰시고 계셨나요."

"아, 아뇨. 딱히 없어도 상관은 없다고 생각하고."

"...그러면 저도 상관 없습니다."

다정하면서도 의외로 꾸미는 거짓말이 서툴었다. 그런 점도 좋았다. 살풋 웃던 사요는 옆에 두었던 필통을 열어 얇은 볼펜을 하나 꺼냈다. 몇 번 흔들고는 꼭지를 눌러 심을 냈다. 화면을 넘기던 츠구미의 오른손 안에 천천히 제 이름을 세로로 적었다. 보드라운 살 위에 적는 것이라 글씨가 찌그러져 획을 두어 번 다시 긋느라 이름 한 자가 유독 두꺼워졌다. 

이러면 될까요? 츠구미의 손을 돌려주며 사요가 물었다. 볼펜이 자연스럽게 츠구미의 손으로 옮겨간다. 저는 어디에 적고 싶냐면요... 

비는 하루종일 올 것처럼 잔잔히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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