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사히나 이름 없는 화분

망고님 리퀘

치사토의 방에는 이름 모를 화분들이 줄지어 놓여 있는데 치사토는 그것을 모른다.


선물로 들어온 것도, 저가 사온 것도 있었다. 뭐가 먼저 들어왔고 뭐에 물을 언제 줬는지도 모른다. 비단 바쁜 배우로서의 스케줄 탓만은 아니다. 치사토가 그것에 관심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관심이 있었더라면 없는 시간이라도 쪼개서 이름을 알아보고, 볕에 따라 위치도 돌려주었을 것이다. 물을 언제 줘야 하는지 작게라도 적어두거나. 휴일엔 괜히 화분들을 바라보며 웃고. 관심을 가지렴, 그건 시라사기 치사토가 제일 싫어하는 잔소리 중 하나다.


전부 다육식물이었다... 아마도? 확신이 없어 애매한 물음을 덧붙여야 했다. 햇빛이 강하지 않은 방에 놓기엔 안성맞춤인 품종들이었지만 치사토는 이런 것에 지식이 전무했다. 커튼을 화분이 가려지지 않도록 반절만 치는 것 이상의 관심은 두지 않았다. 특별히 알록달록한 색도 아니었으므로 화분들은 적당히 방의 공기를 환기시켜주는 정도로만 거기에 존재했다. 치사토는 그것들이 살아있는지도 종종 잊곤 했다. 딱 그 정도의 관심. 별로 좋진 않지만 싫지도 않은 어중간함에 줄지어있는 화분들. 그들에게 이름이 있어야 할까. 며칠만에 방을 둘러보던 치사토는 끄트머리의 화분 하나가 시들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누렇게 죽어 몸체의 절반 정도가 늘어져서야 눈치를 챘다. 기분전환으로 책장의 위치를 바꾸었는데 그 탓에 햇빛을 못 받은 것 같았다. 사람 손바닥만한 화분을 감정없이 비우며 치사토는 이걸 누구에게 받았었는지 한참 생각해보았다. 


역시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


파스파레는 당분간 휴식기였다. 저번달 초에 정규 앨범을 냈었다. 활동 전후로 잡아놓은 타 방송 스케줄이나 특별 무대 연습도 이제 거의 다 끝나, 모두가 휴가를 받은 참이었다. 물론 배우의 일도 있는 치사토에겐 같이하는 멤버 정도만 다를 뿐 출근은 똑같았다. 매니저의 차 뒤에 앉은 치사토는 느릿하게 휴대폰의 전화번호부를 열었다. 

한 번 활동을 할 때마다 새로운 연예계의 사람들을 만나게 되곤 했다. 배우일땐 만날 일 없던 아이돌 쪽의 사람들. 아이돌은 워낙 많고, 순식간에 업계에서 사라지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인지도라는게 늘 널을 뛰지만 이 바닥은 특히 더한 감이 있었다. 당장 파스파레와 비슷한 시기에 데뷔한 아이돌 중 지금까지 아이돌을 하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정도였다. 있다 하더라도, 그 때의 위치 이상으로 올라온 아이돌은 파스파레 뿐이었다.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을 것 같은 번호는 과감히 지우고, 남은 목록을 깔끔하게 분류해서 그룹별로 저장을 했다. 전화번호부는 늘 가장 많이 연락한 순서대로 정리하곤 했다. 굳이 문자나 전화가 아니더라도 요즘은 연락할 수 있는 방식이 널렸다. 덕분에 연락한 순서대로 정리를 하면 꽤나 뒤죽박죽이 되는데 치사토는 내버려 두었다. 그 와중에도 삐죽이며 맨 위에 놓인 번호는 늘 비슷했으니 상관 없었다.


히카와 히나.


이번 변덕은 오래가네. 물이 끓는 소리가 났다. 치사토는 물을 부으며 그대로 올려둔 휴대폰을 힐긋거렸다. 그 애는 이래저래 하나에 정착할 성격이 못 됐다. 그런 점이 은연중에 잘 맞는다는 사실은 부정하지 못하겠지만, 치사토는 컵에 물을 부었다.


'치사토는 뭐가 제일 빨라?'


얘는 왜 이렇게 단어를 듬성듬성 빼고 말할까. 방송 캐릭터로는 그럭저럭 괜찮아도 현실에선 당황스럽기 그지없었다. 적응할 때까지 시간이 좀 걸렸다. 


'연락 말이야. 그럼 그걸로 하게.'


문자, sns라면 라인, 톡이라던가. 전화가 좋아? 너와 내가 개인적으로 연락할 일이 얼마나 많을 거라고 하나하나 나열하는거니. 치사토는 곰곰 생각하다 문자를 골랐고, 놀랍게도 히나의 연락 빈도는 전화번호부의 가장 윗 줄에서 왔다갔다했다. 거기까진 적당히 신기하다고 넘어갈 일이었다.


프림이 들어간 인스턴트 커피를 마시게 된 건 언제였더라? 그 전까지의 치사토는 원두커피조차 철저히 입에 대질 않던 사람이었다. 너무 달아. 한 모금 머금자마자 얼굴이 찌푸려졌다. 제멋대로 수가 늘었다 줄었다 하는 창가의 화분들과, 대충 저어 넣은 프림 믹스 커피. 치사토는 무거운 고개를 기울여 휴대폰 화면을 응시했다. 

누구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는 건지. 느리게 눈을 감았다 떴다.


'화분이 엄청 많다.'


히나가 말해주고 나서야 알았다. 아. 아무 의미 없는 탄성이 작게 울렸다. 많이 가지고 있다고 해서 꼭 좋아하는 건 아니니까. 묻기도 전에 미리 대답했던 것 같다. 치사토는 괜히 손가락을 눌러 폈다. 살짝 뻐근한 소리가 났다.


'그렇지...'


그 애는 묘하게 슬퍼보이는 얼굴이었다. 이건 낯선 상황이었다. 치사토에게 있어서는 그랬다. 히나는 예의 그 어색한 표정을 지우지 않은 채로 작은 잎을 만지작거렸다. 그렇구나. 그제야 치사토는 제가 히나에게 꽤 무례한 가면을 씌우고 있다는 것을 알아채었다. 도무지 어느 부분에서 사과해야할지 모르겠는 실례였다. 


그러니 미안하다는 말은 해야할텐데. 생각은 품었으나 먼저 손을 움직이진 못했다. 이기적이었다. 사실 이런 프림 커피는 커피라고 하기엔 밍밍했고 아주 제대로 달지도 않다. 네 맛도 내 맛도 아닌 것을 마시면서 방관하는 것. 치사토는 스스로에게 옅은 환멸을 느낀다. 체온만큼 미지근해진 잔을 가벼히 두드리는데 초인종이 울렸다. 


"누구세요?"


올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 불안보다 기대가 차오르는 것은 직전에 계속 생각했던 사람 탓일 테다. 치사토는 인터폰을 살짝 들여다보곤 눈썹을 살짝 찌푸리며 현관으로 나갔다.


현관 앞엔 아무도 없었다. 택배 기사들은 종종 사람이 나오는 낌새가 보이면 물건을 두고 휙 가버리곤 했다. 썩 성의없었지만 치사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묵묵히 택배를 내려다 볼 뿐이었다. 받는 사람의 이름이 익숙했으나 저의 이름은 아니었다. 어쨌든 치사토는 이름 일곱자만 대면 대부분의 사람이 알게 되는 정도의 사람이었기에, 본명으로 택배를 받을 수가 없었던 탓이다. 종종 돌려쓰는 가명 중 하나다. 이걸 아는 사람이 누구누구였지. 머릿속이 복잡하고 불안정하게 얽히는 기분이었다. 


'가명이라지만 정말 치사토랑 안 어울리네~ 그런 부분에서는 충분히 합격! 메시지로는 가끔 불러봐도 돼? 아무도 모르잖아.'


그리고 너는 모두가 아는 이름을 썼다. 보낸 사람의 이름을 확인한 치사토는 그제야 의심 가신 손짓으로 상자를 이리저리 돌려보다 들고 들어왔다. 


별로 크지 않은 상자였다. 품에 쏙 들어오고도 애매하게 팔이 남을 정도의 크기. 파손주의 스티커가 덕지덕지 붙어있어 치사토는 얼굴을 찌푸렸다. 보낸 사람이 붙인건지 택배사에서 붙인건지 모르겠다. 커터칼로 몇 번이나 테이프 중앙을 가르고 나서야 상자를 뜯을 수 있었다. 참 여러 방면에서 귀찮은 애였다. 그렇게 투덜거려보면서도 치사토는 조금 웃고 있었다.

작은 화분. 제 창가에 가득 놓여있는 것과 구분짓기 어려울 정도로, 그냥 그 비슷한 종류 중 하나 같은 화분이다. 이미 무언가가 심겨 있어서 딱히 뭘 할 필요는 없어보였다. 같이 온 작은 종이에는 식물에 대한 설명이 적혀있는 것 같았다. 그것 외엔 아무것도 담겨있지 않았다. 치사토는 꺼내놓은 화분을 바라보았다. 뭔가 색이 독특한 것도 아니다. 별 생각 없이 준 거라면 어지간히 악취미네. 치사토는 한숨을 쉬며 종이를 들었다. 따로 넣은 종이인건지 설명이 사람의 글씨로 적혀 있었다. 가지런하고 읽기 쉬운 필체는 처음 보는 것이었다.

칠변화. 일곱 번 변한다 하여 붙여졌다. 물은 언제 주고, 어디에 두고. 살짝 까다로운 몇 줄의 설명 아래에 비로소 익숙한 필체가 눈에 들어왔다. 성격 급하게 끝이 오른쪽으로 날아가듯 끝맺히는 히나의 글씨는 한 줄도 아니고 한 단어 뿐이었다.


닮았어.


나와? 아니면 너와. 치사토는 갸웃거렸다. 이 대단치 않은 화분은 얼마든지 방에 있다. 특이한 이름과 종이 닮았다는 걸까. 아니면. 치사토는 그것을 들어 제 방으로 들어왔다. 그러고 보니 최근에 하나가 시들었으니 조금 더 여유를 터서, 혹은 배치를 좀 바꿔서 놓으면 충분히 하나 정도는 더 들어갈 수 있을 테다. 별로 심각치 않게 고민해서 정한 자리는 바로 아래에 놓인 침대 위치론 정확히 치사토의 머리맡이 되었다.

나는 히카와 히나의 이름을 그저 이름 정자로 저장해 놓았던가. 치사토는 비어있는 화분의 이름표를 멍하니 보며 기억을 더듬어보았다. 그러니까, 아. 닮았구나. 그제야 고개를 끄덕인 치사토는 방의 불을 끄지 않고 거실로 나왔다. 방문이 작은 소리를 내며 닫혔다.


치사토의 방에 있는 화분은 이제 그것 하나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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