츠구사요 어느 만우절의 이야기

제목은어떻게짓는걸까요?

평범한 월요일, 한 주가 막 시작되려는 출발점이기도 하다. 뒤를 돌아보면 달콤한 주말이요, 앞을 바라보면 까마득히 먼 하루들이 줄지어 있어 쉬이 기운이 빠질 법 한데도 사요의 발걸음은 가볍기 그지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 조금 사귀었다고 해도 괜찮을 귀여운 여자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이라면 누구나 그렇지 않을까. 하고 사요는 유하게 생각해본다. 이제 조금이라는 것은 단순히 연애를 시작하고부터 지금까지의 날짜를 세었을 때의 말이다. 100일이 갓 넘은 풋풋한 일수니까, 막 사귀고 있는 때 정도가 아닐지. 가뜩이나 이런 것에 있어서 천천히 점진적으로 나아가길 원하는 사요에겐  그 정도의 진도 표현이 알맞았다.

날은 차츰차츰 풀려 조금씩 연분홍빛의 봄에 물들어 가고 있었다. 해가 많이 길어졌다. 춘분이 막 지났으니 한참 해가 하늘에서 줄다리기를 할 때다. 같은 시간이지만 그 전보다 밝을 때에, 꽃이 핀 거리를 걸어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사요는 어찌되었건 좋았다. 어제보다 덜 쌀쌀하니 은근하게 잠깐 꽃을 구경하러 같이 카페 밖으로 나오자고 권유할 수도 있을 것이다. 습관처럼 어떤 행동을 하고 무슨 대화를 할 지 계획해보던 사요는 제법 씩씩하게 카페 문을 열었다.

"아, 사요씨. 어서오세요."

그렇지만 이건 계획에 없었는데. 사요는 그대로 멈췄다가 닫히는 유리 문에 엉덩이를 부딪혔다.

"그러니까...츠구미씨. 이건...아니, 하자와씨?"

아하하. 가볍게 웃던 상대가 곤란하다는 듯 눈을 깜박였다. 연갈색의 부드럽게 휘어진 눈동자는 그대로였지만, 사요는 완전히 고장난 상태로 입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제 것만큼 긴 고동색의 머리카락이 허리즈음까지 부드럽게 내려온다. 앞머리는 그 전보다 길러 훨씬 어른스러운 분위기가 풍겼다. 그보다 어른, 이라고 하는게 맞지 않을까. 여전히 사요보다 조금 작지만 원래의 키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키. 같은 목소리인데도 어딘가 다르게 느껴지는 톤이 나긋하고 여유로워서 귓가가 후끈거리며 달아올랐다. 사요가 더듬거렸다. 하자와씨 맞아요? 상대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특유의 팔자눈썹을 지었다. 그 모습이 너무나도, 잘 알던 그 사람이 맞았다.

"아마도 그런 것 같네요."
"아마도, 라뇨..."
"아하하... 그렇지만 이런 상황이라면 제가 저인지도 솔직히 잘 모르겠는걸요."

하자와 츠구미. 스물 세 살이에요. 트레이를 내려놓고 흘러내리던 머리를 한 쪽으로 넘기던 츠구미가 말했다.


츠구미는 능숙하게 잔을 두 개 내려놓았다. 사요는 유심히 츠구미의 잔을 살폈다. 시선을 느낀 츠구미가 바람 빠지는 웃음소리를 내며 사요 쪽으로 잔을 살짝 내밀어주었다.

"그렇게 궁금해요?"
"...전과 다른 메뉴를 고르셨나 해서."
"음... '평소대로' 인걸요?"

향긋한 내음이 올라오는 따뜻한 꽃차가 잔에 담겨 찰랑였다. 사요는 멋쩍은 표정으로 잔을 다시 츠구미의 쪽에 밀어주었다. 늘 올곧았던 시선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츠구미의 곁에서 겨우 맴돌았다. 한참의 적막 후에 사요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주변에선. 뭐라고 하던가요. 다들... 괜찮다고 해 주시던가요."

사요는 말을 하면서도 어딘가 아귀가 맞지 않음을 느꼈다. 멀쩡한 사람이, 그것도 집안에만 있는 사람이 아니라 손님을 받는 카페의 종업원이 갑자기 네 살이나 나이를 먹어 왔는데 다들 아무렇지 않단 말인가. 하다못해 제 주변에 앉아있는 손님 중 사요의 눈에도 익을 정도로 자주 오는 단골이 몇 보였다. 그들은 둘이 앉은 테이블에 시선조차 주지 않은 채 저들의 이야기를 하느라 바빴다. 그 정도로 다른 사람으로 보이는걸까, 싶어도 전혀 그렇지 않았다. 우선 유니폼부터 바뀌질 않았으니. 사요는 느리게 츠구미를 다시 살폈다. 품이 조금 크고 빳빳한 와이셔츠와 연노랑의 앞치마는 새 것이었지만 이미지가 다를 정도는 아니었다.

"이거, 오늘 아침 사요씨가 다려주셨는데."
"제가요...?"

츠구미가 살풋 웃었다. 한쪽 손으로 턱을 괸 채 사요를 바라보는 시선이 기분 좋게 미지근해서, 사요는 괜히 쭈뼛거리며 허리를 고쳐 펴 앉았다.

"사요씨. 오늘 무슨 날인지 아세요?"
"오늘은.."

사요는 고개를 돌려 달력이 걸린 벽을 바라보았다. 막 새 달이 시작된 시점. 그리고 4월이다. 4월 1일. 오늘은 밴드 연습도, 학생회 회의도 없었다.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 할 겨를이 없었던 데다 히나도 아침에 일찍 먼저 나갔었기 때문에 여지껏 눈치를 채지 못 하고 있었다. 기억을 더듬던 사요가 느리게 눈을 감았다 떴다.

"만우절이군요..."
"아하하..."
"정말 완벽하게 속았어요. 놀라기도 놀랐고...이제 알았지만, 잠시 그 모습으로 계셔도 괜찮으실 것 같은걸요. 굉장히 잘 어울려요."
"만우절은 만우절이지만, 사요씨를 속인 적은 없는걸요. 저, 여전히 거짓말을 잘 못하기도 하고."

어리둥절한 표정의 사요를 바라보던 츠구미가 어깨를 으쓱였다.

"저, 정말 지금의 사요씨보다 연상이 맞아요."


평범한 월요일. 이만치 사람의 기운을 빠지게 할 두개의 단어 조합이 있을까 싶었지만 츠구미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새로 뽑은 알바생 덕분에 이렇게 첫 날의 마감은 제가 하지 않아도 되었다. 마침 봄이었고, 날은 막 길어지고 있었고...춘분이 언제였는지 기억은 나지 않았지만, 제법 늦은 시간인데도 밝아서 기분까지 같이 화창해지는 듯 했다. 이런 날은 막 퇴근해 제 쪽으로 오고있을 사요와 우연히 마주친 척 만나 슬쩍 같이 걷자고 하기 제격이다. 게다가 오늘은 만우절이었다. 가게의 일이 바빠 괜히 직원에게 장난을 치려 하는 손님 몇 외엔 제대로 즐기지 못했으므로, 사요에게 무언가 장난을 쳐볼 심산이었다. 

'교복을 입고 가볼까...'

진부하지만 그만큼 통하는 수요가 있기에 먹혀드는 장난 아닐까 싶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츠구미의 키는 졸업할때까지 드라마틱하게 자란 편은 아니기에 조금 짧더라도 그럭저럭 커버할 수 있을 듯 했다. 조금 짖궂은 상상을 하며 우선 집으로 가려던 츠구미는 순간 약간의 두통을 느꼈다. 어질어질 시선이 흔들리다가 가라앉았다. 오늘 유독  손님이 몰려서 쉴 틈이 없긴 했지만 대놓고 시야가 흐트러진 적은 없었다. 당황하던 츠구미는 고개를 몇 번 흔들었다. 길을 지나가던 사람들이 영화의 되감기 장면처럼 부옇게 이상한 소리를 내며 지나가는 것 같았지만 그저 환청일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들었더니.

처음으로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을 때는 마침 집으로 가던 유키나와 리사를 마주했을 때였다. 어째서인지 3학년 교복을 입은 둘은 그리우면서도 낯설었다. 서로를 속이려 교복을 입은 걸까, 싶다가도 어딘가 앳된 얼굴에 인사를 하니 이질감이 느껴졌다. 아예 철저히 고등학생 때처럼 분장도 한 걸까. 키도 어쩐지 작은 것  같아 츠구미는 머리를 긁적였다. 이상한 기분은 쉬이 가라앉질 않았으나, 상대들은 아무렇지 않게 제 인사를 받아주고 지나갔으므로 그러려니 했다. 

아코와 빵을 사 가던 토모에를 마주쳤을 때 츠구미는 확신했다. 제가 과거로 돌아왔노라고. 비록 다른 사람들은 제 달라진 모습을 알아보지 못하는 모양인지, 만우절의 장난 정도로 여기는 모양인지 크게 관심이 없는 모양이었지만 확신할 수 있었다.

'뭐? 거짓말이라니. 그건 아까도 했잖아. 학생회 일이 남았다고 거짓말 했으면서.'


"...그래서 우선 카페에 돌아와서, 자연스럽게 일을 하고 있었는데 내내 아무도 알아채지 못하시길래."
"다른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한다니.."
"단순히 만우절의 장난 정도로 여기는 건지도 모르지만요.."
"그러기엔 꽤 많이 다르신걸요."
"그러고보니 사요씨, 들어오셨을 때 부터 놀라셨지요?"

후후. 츠구미가 즐겁다는 듯 웃었다. 방법은 많이 달라졌지만, 사요씨를 놀래키는 것 정도는 성공했네요.

"그렇게나 많이 달라졌어요?"
"으음..."
"어렵게 생각하시라고 한 말은 아니었어요. 어쨌든 기쁜걸요."

사요는 잔을 내려다보다 고개를 도로 들었다. 스물 세 살의 츠구미는 어떻게 보면 열 여덟의 츠구미보다는 느긋하고 기합이 덜 들어가 있는 모습처럼 보였지만, 깊고 단단한 눈을 마주할 때마다 또 그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사요는 저도 모르게 숨을 죽였다. 침을 넘기는 소리가 목을 붉히며 안에서 울려오는 것 같았다. 어, 어떤점이, 기쁜지... 갑자기 저보다 연상이 된 연인의 앞에서 사요는 자꾸만 작아지는 기분이었다.

"사요씨가 가장 먼저 알아봐 주셨으니까. 사요씨만 알아주셨으니까요. 제 원래 모습을."

나직한 목소리는 테이블에서부터 위로 올라오듯 맴돌았다. 츠구미가 눈을 살짝 감았다. 단정히 감긴 눈과 호선을 그리며 올라온 입이 정말 기뻐보였기에 사요는 아무 행동도 취할 수 없었다. 조금 뒤에야 사요는 변명하듯 문장을 덧붙였다.

"...지금은  츠구미씨가 저보다 나이가 많으니, 말을 놓으셔도 되지 않겠어요."
"그러고 보니 사요씨는, 이 때부터 제가 스물 셋이 될 때까지 말을 놓지 않으셨다는 거 아시나요?"
"이제 알았어도 그 때가 될 때까지 계속 놓지 않을 겁니다."
"입, 엄청 삐죽이고 있어요."

츠구미가 제 입을 검지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장난스레 대답했다. 사요는 겉잡을 수 없이 붉어지는 볼을 식힐 방법이 없었다. 하필 커피도 뜨거운데 덜 식기까지 해서. 츠구미의 미소는 흐트러질 새가 없었다.

"뭐어... 만우절이기도 하고. 너무 놀려버린 것 같아서 죄송하니까, 한 번만이에요."

알았지? 사요. 나긋한 목소리. 츠구미는 장난스레 눈을 감았다. 

원래 이런 이야기에선, 상대가 키스를 하면 해피엔딩이 났던 것 같은데. 그런 것 믿어?


"사요씨...?"

사요가 감았던 눈을 뜨자 제 눈 앞에는 발개진 볼에 부채질을 하던 츠구미가 동그랗게 눈을 뜨고 앉아있었다.

"가,갑자기 다가오시니까..."
"...후후."

그러고보니, 그 때의 저와 당신은 그대로 여전한지 묻지 못했네요. 너무 자연스러워서, 바뀌지 않은 것 같았기에. 사요는 속으로만 중얼거렸다. 짧은 앞머리를 괜시리 손으로 쓸어내리던 츠구미만 안절부절 못하는 얼굴로 사요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ps.
의도는 아니고 주기도 알못이지만...
2023년의 4월1일 만우절은 오늘과 같은 월요일이네요...
라고생각했을때 츠구미의 나이는이미 스물둘이 아니라 스물셋이었음 이런ㅅㅂ 그냥보세요.........
저자꾸 올해를 2018년이라고 생각하고있어서.........

카이린 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

하늘은 별 바다
하늘은 별 바다
구독자 15

0개의 댓글

SNS 계정으로 간편하게 로그인하고 댓글을 남겨주세요.
새로운 알림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