츠구사요 무제

글...재활좀... 왜맨날 재활만하고있지



안녕하세요, 츠구미씨.

사요는 덤덤한 목소리로 인사를 건넨다. 대답은 없었다. 익숙한 일이었다. 이제 사요는 그 대답이 어떤 형태로 들려오더라도 어색할 것임을 안다. 기억이 나질 않았다. 다정하고 또랑또랑한 목소리의 형태가, 어떤 울림으로 제 귓가를 간질여 주었는지. 얼마나 오랫동안 맴돌며 저를 따뜻하게 데워 주었는지에 대해.

오랜만이지요.

그럼에도 발걸음은 규칙적으로 이 곳을 찾았다. 시간의 간격은 조금씩 벌어지고 있었으나 사요는 느릿하게 새겨지는 나이테를 밟듯이 같은 곳을 향하곤 했다. 이번에는 얼마만에 온 것이었더라. 어디에도 둘 곳이 없어 어정쩡히 들어올려진 손으로 손가락을 하나씩 접어본다. 한 달 즈음. 흐리고 불투명한 하루들을 세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세어두지 않으면. 츠구미는 깔끔하게 정리된 그의 일정 같은 것을 은근하게 좋아했다. 어른같다는 이유였다. 스물 다섯의 사요는 여전히 어렸고, 그만큼 제 앞의 사람에게 어른스러워 보이고 싶었다. 등 뒤로 쥐고 있는 꽃다발이 연신 바스락거렸다. 우울한 재촉이었다.

...신곡의 연습이 바쁘더군요. 새로 이사한 곳은, 이 곳에서 조금 떨어져 있습니다. 

다짐이 무섭도록 나오는 변명에 사요의 귀가 조금 벌개졌다. 애써 시선을 오른쪽 아래로 돌렸다. 물론 제가 작년에 새 차를 샀지요. 그 덕에 조금 작은 집으로 들어가게 되었고. 지금 지내는 곳은 또 다릅니다. 

사요는 한 곳에 오래 머무르질 못했다. 그렇다고 어디론가로 훌쩍 떠나지도 못했다. 그에게 있어 중심점은 이 곳이었고, 그는 이 주변을 행성처럼 느리게 공전하고 있었다. 예상과 달리 사요의 아주 조금 어린 동생은 사요를 말리지 않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요는 종종 생각했다. 우주가 있다면 이 정도로 조용할까. 진공의 상태에서 소리는 들리지 않을테니. 그럼에도 제 앞의 존재가 자신의 말을 들어주리라 믿고 있었다. 

당신의 친구들이...

말이 살짝 멎었다. 사요는 몸을 숙여 한 쪽 다리를 풀밭에 대었다. 빳빳한 풀의 감촉이 소름돋을만큼 싸늘했다. 입술을 옅게 깨물며 그 온도를 그대로 받아낸다. 꽃병에 꽂힌 네 송이의 꽃. 꽃잎을 더듬어보면 온통 얼어 있었으나, 죽어가는 중에도 이 계절의 색은 아니었다. 여전히 매일 찾아오는건지 사요는 알 수 없다. 이 곳을 중심으로 도는 행성이 저뿐만이 아닌 것에 질투를 내기에는 지나치게 늦어 있었다. 봉우리가 떨어져 나가지 않도록, 곁에 받칠만한 안개꽃을 몇 송이 끼워 모양을 잡았다. 듬성듬성 비어 조촐해진 꽃다발을 그 앞에 내려놓는다. 다시 와보면 없어져 있을 것. 아무 의미 없는 행위. 

사요는 서리가 낀 이름을 매만져본다. 바람에. 비에, 눈에 쓸려 잔 상처가 늘은 그것은 매끄러움과 거리가 멀었다. 사요는 이 쪽이 좋았다. 우스운 일이다. 더 이상 츠구미의 손길이 어땠는지조차 기억이 없는데, 잃어갈 수록 이 장소는 조금씩 그 상대와 닮아간다는 것이. 착각일지도 몰랐다. 외로움에 지친 무의식이 그리 생각을 옮겨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사요는 일어섰다. 땅에 대었던 종아리의 감각이 둔했다. 감정에 감각이 있다면 이런 흐리멍텅한 상태일 것이라고 바보처럼 생각했다. 

그럼,

사요는 더 이상 사람에게 제대로 된 작별인사를 하지 않았다. 할 수 없었다. 안녕히 계세요. 그 말은 사요에게 있어서 죽어버린 언어와 같았다. 지독한 후회로 단어의 모서리마다 녹이 지고 곰팡이가 슬어버려 입 밖으로 꺼낼 수가 없었다.
그건 히카와 사요가 하자와 츠구미에게 마지막으로 했던 말이다.
아무 예고 없이 남겨진 사람은 실핏줄이 터진 눈으로 자신의 모든 행동을 돌아볼 수 밖에 없다. 5년 전, 끊겨져 나가던 사요의 심장에 박힌 건 자신의 작별인사였다.  그런 말만 하지 않았더라면, 사요는 제게서 여섯 글자를 끊어냈다.

조금 있다가 뵙겠습니다.

추위에 얼어가는 손으로도 닿는 것을 부드럽게 쓰다듬던 사요는 몸을 완전히 일으켰다. 있다가 뵈어요. 나중 같은 단어도 그에게는 너무 멀었기에. 스스로 여기저기 베어내 뭉툭해진 글자들이 얼기설기 엉켜 꽃다발 위로 나지막히 내려앉았다. 

야속하게도, 낮이 다시금 조금씩 길어지고 있었다. 겨울의 가장 모서리를 두드린 시간이 천천히 사요의 뒤를 따라 까맣게 늘어졌다. 사요는 단 한 번도 울지 않았다. 언제나, 변함 없이.

당신이 이 세상에 없어도 꾸준히 반복되는 것. 셀 수 없이 많은 고목의 나이테 같은 것... 

이 모든 것이 당신을 안심시킬 수 있도록.
사요의 발걸음 소리는 자장가와 같이 내려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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