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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백/백7] 쥰나나나 13인 앤솔로지 [별 축제의 밤에] 인포

2020년 2월 22일 '모두의 백합' 행사에 나오는 쥰나 x 나나 (왼른표기무관) (편집멤버 포함) 13인 앤솔로지 인포입니다.

반드시 선입금 후에 폼을 작성해주세요!

> 선입금 링크 http://naver.me/5KSEJexu (~02/10까지) <


이하 샘플페이지입니다.

(각 페이지는 꼭 이어지진 않습니다.)
(만화 페이지는 옆으로, 글 페이지는 아래로 슬라이드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요추님


두울곰님


청주님


221님


라즈님

PC님


뭉글님

그날은 유독 달이 밝았다.

한밤중이었을까. 조심스레 눈을 뜨면 주위는 온통 빛으로 환했다. 방 전체가 그것으로 가득한 것이, 조금 어두운 낮과 같았다. 들어오는 정신은 기나긴 꿈에서 막 빠져나온 마냥 몽롱했다. 눈가를 문질러 잠을 깨우고 이질적으로 밝은 부분을 깨운 눈으로 응시하면, 짙은 빛무리 하나가 방을 일직선으로 가르고 있음을 알았다.

그 속에, 짧은 그림자 하나가 있었다.

“나나?”

아직 잠긴 목소리로 그 이름을 부르면, 놀란 듯 돌아보는 네가 그곳에 있었다. 응, 하고 작게 답하는 소리가 명료하게 들려왔다.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작게 뒤를 이었다. 이쪽으로 몸을 돌린 듯했지만, 앞이 흐려 잘 보이지는 않았다. 손을 뻗어 안경을 찾았다. 손에 쥔 것을 펴고 얼굴 위로 올렸다. 이상하지. 그 일련의 행동이 평소의 배는 느리게 느껴졌다.

“일어났어?”

다시금 눈을 깜빡이면 그제야 주위가 눈에 들어섰다. 나나는 창가를 향해 앉은 채, 몸을 동그랗게 말고 있었다. 짙은 녹빛의 눈동자가 달빛을 머금은 채 반짝였다.

“나나, 아직 안 자고 있었어?”
“응.”

다소 곤란하다는 얼굴이었다. 의아한 듯 내려보면 그저 부드러운 미소가 화답해왔다. 반사적으로 침대에서 몸을 빼냈다.

짙은 빛무리 속, 그림자는 이제 둘이었다.

“곧 마지막이네.”
“…응.”

목소리가 다소 무거움을 느꼈다. 내리깐 시선이 바닥에 가라앉아 있었다. 이런 일이 있던가 생각해보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보통은 없었다. 긴장해서 잠을 설치는 경우야 보통 제 몫이었다. 그럴 때 같이 잠들지 않고 곁을 지켜주는 사람이 바로 나나였으니까.

있을 법한 경우의 수를 몇 가지 추려본다. 마지막, 101회, 졸업, 각자의 길. 엇비슷한 어귀의 단어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즈음 사념을 끊었다. 여러 가능성을 세어보지만 모든 것은 추측일 뿐. 당사자의 말을 직접 듣는 것이 아니라면 무의미했다.

“오늘, 달이 밝네.”
“응, 예쁘지? 겨울이라 그런가 봐.”

하늘을 올려보며 이야기하자, 옆의 시선이 위로 따라 올라옴을 알 수 있었다. 너는 때때로 많은 것을 눈으로 말하는 것 같았다. 나나, 너는 그 사실을 알고 있을까. 문득 궁금증이 일었다.


매디님 

전갈자리 : 전갈의 꼬리와 세상을 낚아 올리는 낚시바늘. 태양 마차를 몰던 파에톤을 위협하여 태양 마차의 조종을 방해했다는 이야기와, 마오리족의 마우이가 뉴질랜드 섬을 바닷 속에서 끌어올릴 때 쓴 낚시바늘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별을 향해 낚시 바늘을 던진 소녀

~ 전갈의 꼬리 ~

다이바 나나는 너무나도 상냥한 사람이다. 그 더없을 정도의 상냥함은 뒤틀려서 친구들을 수십 년의 반복되는 윤회극에 가둬버리기도 했지만 근본이 사악하지는 않다. 친구들에게 바나나 머핀을 챙겨 주고, 누가 시키지 않았음에도 기숙사에서 친구들의 식사를 챙겨준다. 천성이 그런 사람이다. 다이바 나나는 천성이 상냥한 사람이다.

호시미 쥰나는 강직하고 올곧은 사람이다. 가끔 상식을 벗어나는 상황에서 당황해서 제대로 된 판단이나 행동을 하지 못해 손해를 보는 경우도 있지만, 그만큼 기본이 곧고 깊게 바닥 깊숙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이야기기도 하다. 반장이라는 자리와 학업 성적 상위권이라는 위치는 성실한 학교생활이 맺은 열매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다.

두 사람이 서로에게 호감을 가지게 되고 결국 연애를 시작하게 된 것은 이런 성격을 생각해 본다면 너무나도 당연한 결과였다. 앞을 가로막는 벽이 있으면 뒤로 돌아 가거나 거기서 멈출 생각을 하지 않고 벽을 뛰어 넘거나 부숴버리려 하는 호시미 쥰나에게 곧고 날카로운 호시미 쥰나를 부드럽게 감싸주는 다이바 나나의 포용력은 날카로운 칼에 칼집을 씌우는 것과 같았다. 쥰나는 딱딱하기만 해 부러질 뻔한 자신을 붙잡아 준 나나가 고마웠고, 나나는 줏대 없이 흔들리는 자신을 붙잡아준 쥰나가 좋았다.

(중략) 

다른 사람이 안전한 길을 택하라고 했다면 쥰나는 진작에 화를 내면서 기숙사 방을 뛰쳐나갔을 것이다. 하지만 나나의 만류는 함께 연극을 할 나나가 힘들어서가 아니라 만에 하나 잘못 되었을 때 쥰나의 성적이 나쁘게 나와 졸업 이후에 어려움을 겪게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걱정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았기에 쥰나는 화를 내지 않고 차근차근 나나를 설득하려고 했다. 쥰나는 자신의 날을 받아주는 나나의 부드러움을 좋아했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였다.

두 사람의 의견 차이는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배역을 명확하게 정하지 않고 두 사람이 동시에 맡는다거나, 별다른 분장 없이 이름표를 드는 것으로 현재 어떤 역을 나타내는 지 알려주는 방식이라던가, 여러 가지 요소들이 쥰나의 입에서 흘러나왔고, 나나의 입에서는 ‘그건 좀......’ 이라던가 ‘너무 어렵지 않을까?’ 라는 물음표가 붙은 말이 조금씩 흘러 나왔다.

결국 쥰나는 꺼내서는 안 될 ‘그 말’을 꺼내고 말았다.

“나나는 나를 못 믿어? 나는 이제 막 걸음을 뗀 어린 아이가 아니야!”

나나의 표정이 잔뜩 일그러졌다. 그제야 쥰나는 자신이 말실수를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지만 이미 뱉어낸 말을 주워 담을 수는 없었다. 어떻게든 감춰야 했을 독이 깃든 꼬리로 나나를 찌르고 말았다. 톡 하고 치면 펑 하고 터질 정도로 독을 꾹꾹 눌러 담고 있던 꼬리였다. 쥰나는 언제나 나나의 상냥함에 기대왔지만, 그것은 쥰나 스스로의 가능성의 일부분을 좀먹어 들어가는 것이기도 했다. 그저 이번에는 그것이 터졌을 뿐이다. 전갈독의 매캐한 독기운이 기숙사 방을 맴돌았다.

나나는 나나대로 속이 복잡했다. 쥰나에게 ‘그런 게 아니야’ 라고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쥰나의 일갈에 대답하려는 입술이 열리지 않았다. 쥰나의 말은 사실이었으니까. ‘나의 쥰나’는 ‘쥰쥰’이라고 불리지 않았으니까, 나나는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카이린님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스타라이트는 막을 내렸다.

오랫동안 준비한 무언가가 마침내 끝을 맺었을 때, 내려오는 길을 특히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쥰나는 알고 있다. 삽시간에 긴장이 풀려 발을 헛디딜 수도, 근육에 쥐가 나거나 무력해질 수도 있었다. 아는 만큼 그대로 행동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자신이 아까부터 머그잔을 몇 번씩이나 들었다 내렸다 정신 사납게 굴고 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쥰나가 한숨을 푹 쉬었다.

이런 변화에 몸을 맞추는 것은 어려웠다. 삶 역시 한 편의 연극이다. 그렇다면 자신의 역할이 끝난 후 옷을 갈아입으며 짧게 숨을 돌리는 시간도 똑같이 필요한 법. 지금이 바로 그런 시간이었다. 그러니 의식하지 않고 ……. 생각을 멈춘 쥰나는 자신이 컵을 칼 같은 각도로 다시 들어 올렸음을 깨달았다. 세상에. 몸과 마음이 따로 노는 주제에 진정이 안 되는 건 둘이 똑같다. 쥰나가 느리게 중얼거렸다. 혼자 쉬는 건 왜 이렇게 어려운 걸까.

극이 끝난 지 일주일이 훨씬 넘어가고 있었다. 앞으로 열흘쯤 더 휴일이 이어질 예정이었다. 물론 학교에는 연습을 위해 꼬박꼬박 나가고 있었고, 이번에는 몇 명이 더 기숙사에 남았으므로 작년 같은 느낌은 들지 않았다. 작년은 어떻게 보냈었는지 쥰나는 되돌아보지 않았다. 사실 모든 일에 그랬다. 문제가 없는 이상 언제나 현재에 집중하곤 했으니.

그 짧은 시간동안 달라진 점은 셀 수도 없었지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휴식에 대한 시선이었다. 지난 일주일동안 쥰나는 혼자서 제 시간을 실타래 늘어놓듯 느슨히 풀어보는 중이었다. 그래보았자 잔뜩 의식한 휴식이었기에 어설프기 그지없었다. 알람이 울리고 나서 몇 분 더 뒹굴 거려 보거나(그런다고 잠이 다시 오지는 않았다.)

(중략)

목도리를 바투 매주며 이어지는 마지막 말에 나나는 금세 시무룩한 얼굴로 쥰나를 물끄럼 바라보았다. 저보다 족히 머리 하나정도는 높은 시야를 가졌으면서, 어떻게 하면 아래에서 위를 쳐다보는 것처럼 바라볼 수 있는지 쥰나는 진심으로 궁금했다.

‘조금이면 얼마나?’
‘…하루에 한 번.’
‘세 번.’
‘부모님과 더 많이 대화하는 건 어때? 거기에 집중해야지.’
‘어색하기만 할 것 같아. 나 혼자 돌아가는데... 그리고 쥰나쨩은 돌아간 적도 없었으면서.’
‘경우가 다르잖아. 알았어, 세 번.’

그리고 쥰나는 다음 말을 또박또박 말하기 위해 숨을 한 차례 들이쉬었다.

‘나나는 혼자가 아닌걸. 우리가 널 좋아하는 만큼, 어쩌면 그것보다 훨씬 더 좋아해주실 거야. 네가 해준 이야기를 분석해 봤을 때 확신할 수 있어.’
‘…응. 대신 쥰나쨩도 나 없이 제대로 쉬어야 해.’

쥰나가 으쓱였다.

‘그날 이후로 내가 얼마나 게을러졌는지 모르지? 당분간 룸메이트도 없겠다, 나나가 돌아왔을 때 놀랄 정도로 뒹굴거리고 있을 테니까.’

반쯤 농담이었지만 어느 정도는 진심이었다. 비장한 얼굴의 쥰나를 바라보던 나나가 장난스럽게 웃음을 터트렸다. 처음이야. 그렇게 계획적으로 뒹굴거릴거라고 선포하는 쥰나는.

그리고 현재, 쥰나는 충혈된 눈으로 세 잔째의 핫초코를 타고 있는 중이다.


프라리네님 

한참이고 바라봐도 사라지지 않는 자는 모습을 긴 시간 동안 잠도 이루지 못한 채로 멍하니 바라봤다. 나나가 눈을 뜨지 않을 거라는 연약한 믿음을 가지고 밤을 지새우게 만드는 사랑의 열병에 호시미 쥰나는 평소라면 하지 않을 일을 많이 하는 중이었다.

문득 머리카락 끝을 쓰다듬어보고 싶어서 만져보자, 금발의 얇은 머리카락이 손끝에 부드럽게 흘러내렸다. 나나는 여전히 잠에서 깨지 않은 채였기에 조심스럽게 침대 옆에 주저앉아 한참이고 자는 얼굴을 바라봤다.

스타라이트의 주연이 바뀌고, 무대 장식도 바뀌게 된 날 다이바 나나는 엉망이 된 표정으로 알 수 없는 말을 내뱉고는 쥰나를 두고 도망갔었다. 그리고 오디션의 이야기를 들었다.

오랜 시간 동안 끊이지 않는 `재연`이라는 걸 반복한 나나는 자신이 모르는 사람 같이 느껴져서 순간 두려웠었지만, 밤하늘 아래의 나나는 그저 연약하고 덩치만 커버린 어린아이 같아서, 한참이고 우는 나나를 안아줬었다.

그렇게 기숙사에서 수 없는 이야기를 나눈 새벽이었다. 나나의 이야기는 놀랍기도 했고 이해할 수 없는 부분도 있었지만 나나는 호시미 쥰나를 믿는 듯 모든 걸 다 이야기해 줬다.

이제 모든 게 후련한 듯 작게 웃는 나나의 얼굴을 보는 순간, 알 수 없는 말을 했던 나나의 표정에 한참이고 걱정을 했던 이유가 문득 떠올랐었다. 나나의 그런 표정을 보고 싶지 않았다. 항상 웃어주길 바랐다.

어쩌면 이라는 생각에 기억을 더듬자 나나의 모든 순간이 쥰나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을 점령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모두의 바나나라면서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어 보이는 것도 좋았고, 키가 큰 것도 멋졌다. 항상 사진을 찍고 다정한 부분도 좋았다. 사소한 습관과 개구리를 좋아하는 것마저도 귀엽게 보였다. 호시미 쥰나는 그걸 사랑이라고 정의했다.

닿지 못할 연심을 곱씹으며 멍하게 나나의 표정을 바라보던 중, 손끝에 따스한 온기가 닿아 화들짝 놀라며 뒤로 물러섰다.

나나는 피곤한 눈을 떠 자신을 바라보며 무어라 중얼거리고 있었지만 들리지 않았다. 눈을 비비며 부스스하게 정신 차리듯 일어난 나나를 보다가 자신도 모르게, 그런 말을 내뱉었다. 창밖은 푸른 새벽이었고 해가 뜨기까지도, 두 사람이 등교하기까지도 아직 많은 시간이 남아 있는 순간이었다.

"나나, 사실 나나를 사랑해."


크로옹님 

한손에는 장작을, 한손에는 양초를 들곤 조심스럽게 살금살금 다가간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일렁이는 촛불이 창밖을 살짝 비쳐 보였고 작은 불빛을 통해 노란빛의 머리카락이 보였다.

주변에 사는 사람들 중에 저렇게 선명한 노란 머리를 한 사람은 없었다. 저런 머리색을 가진 사람은 저가 아는 한 단 한 사람뿐이었다.

반가움 반 당황스러운 반 재빨리 문을 연다.

추워지는 시기에는 그는 항상 마을을 떠나 따뜻한 곳으로 향했었기 때문에 이번 방문은 매우 드문 일이었다.

당혹감에 가만히 있던 소녀를 깨운 건 그가 항상 데리고 다니던 개의 울음소리였다. 약간 투정하듯이 문 뒤에서 문으로 들어가고 싶어 하는 것처럼 안절부절 하지 못하고 발치를 서성인다.

“잠깐 비 좀 피할 수 있을까?”

가벼운 인사와 함께 웃으며 몸을 이미 반쯤 문에 걸쳐 있었지만 확인을 받듯이 재차 묻는다. 문을 통해 들어오는 기운이 센 찬바람을 깨달아 어서 들어오라고 말한다. 말이 떨어지고 나서야 들어오는 그는 추운 기색도 없이 천천히 집안으로 들어온다. 한참을 비가 오는 밖에 서 있었음에도 가까이 다가갔을 때 찬 기운 하나 없이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막상 손님을 들이고 나서 깨달았지만 쥰나의 집에는 다른 사람을 들일 만큼의 준비가 전혀 되어있지 않았다. 삭막하게 비어 있는 집에는 양피지만 가득했고 잠을 잘 수 있는 공간과 책상만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차 한 잔 내놓을 게 없다면서 멋쩍어 하는 집 주인은 어색한 미소만 짓는다.

(중략)

... 는 거짓말처럼 이미 그쳐있었다.

나나가 내민 손을 주저 하면서 망설이자 도망갈 틈도 없이 손목을 잡아당긴다. 나나의 손에 떠밀리듯이 집밖을 나와 걷기 시작했다.
빛이라곤 하늘에 떠있는 별과 달밖에 없었다.
아무것도 없는 어둠속에서 나나의 손에만 의지해서 걷고 걷다가 발걸음이 멈추었을 때 쥰나도 같이 발걸음을 멈추었다.

어둠에 익숙해진 눈은 나나가 무릎만치 온 돌의 물기를 대충 자신의 소매로 털어내고 앉자 쥰나도 그를 따라 돌에 앉아 하늘을 바라본다.

움직임 없이 가만히 하늘을 수놓았던 별들이 조금씩 원을 그리며 움직이며 하늘에서 별의 비가 흘러내린다.
쥰나는 별에 홀려 아름다운 자연의 광경에 정신을 빼앗겨 저도 모르게 입을 벌리고 하늘을 우러러 봤다.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은 유성우에 감탄을 하며 한참을 별을 바라본다.

벌레 우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조용한 겨울 초원은 정적만이 나돌았다. 나나의 목소리가 정적을 깨고 별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나씩 꺼내며 별을 가리킨다.
그녀의 입에선 끝이 없는 이야기들이 술술 튀어 나왔다.
할머님이 어릴 적 해주었던 옛 이야기보다 더 오래된 이야기들을 어디서 알아냈는지 생전 처음 듣고 보지도 못한 타국의 이야기도 내게 들려준다.

“그 많은 이야기를 혼자 다 기억해?”
“내가 기억하지 않으면 아무도 기억하지 못할 거야.”

입과 입으로만 전해지는 이야기, 단 한명에게만 전승되는 이야기,


혀느님

...걱정돼.”
“걱정 고마워. 나나 하지만 나는 해야 할 일이 있는 걸. 쓰러지지 않게 나름 관리는 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정 걱정되면 나랑 같이 연습할래? 나나랑 같이 하면 나도 좋을 것 같은데. 나나도 내가 너무 무리한다 싶으면 바로 옆에서 말릴 수 있는 게 좋잖아.”
“물론 나도 좋지. 이런 이유가 아니었어도 쥰나쨩이랑 같이 연습하는 건 언제든지 좋아.”
“후후, 고마워 나나. 나도 나나와 함께 연습하는 건 언제든지 좋아. 이제 연습실 시간도 끝날 시간이니 같이 기숙사까지 갈까?”
“물론이지. 그러려고 왔는걸.”

그렇게 둘은 같이 연습실을 나와 걷기 시작했다. 나나는 쥰나에게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계속 고민하느라 눈치채지 못한 것 같지만 지금 쥰나는 기숙사가 아닌 나나와 함께 별을 봤던 장소로 향하고 있었다. 자신을 걱정하는 나나에게는 왜 이렇게까지 하고 있는 건지 이유를 말해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물론 다른 친구들도 저를 걱정하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이 장소는 나나와 쥰나 둘만의 추억이기에. 자신이 마음을 먹은 걸 바로 곁에서 지켜본 것이 나나이기에 쥰나는 굳이 나나가 오는 것을 기다리다 그 장소로 향한 것이다.

도착할 시간이 된 것 같은데 왜 아직도 풍경이 아까랑 똑같은 거지? 라는 생각에 고민하던 것을 멈추고 주위를 돌아보았다.

“쥰나쨩?”
“미안, 멋대로 데리고 와버렸네. 하지만 이유를 말하려면 여기에 와야 할 것 같았어.”
“이유?”
“내가 왜 이러고 있는지 궁금한 거지? 

(중략)

... 위로해줄게.”
“고마워 나나.”
“그리고 이번 오디션 주역을 따내기 위해 힘내자. 마침 이번 이야기는 베니스의 상인이잖아. 피는 흘리지 말고 살점을 가져가라고 말하는 포셔 자리는 천칭자리인 쥰나쨩에게 딱인걸? 이번 각본은 포셔에게 좀 더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는 이야기이기도 하고.”
“후후 그러네. 나나는 그런 포셔에게 청혼하는 바사니오에 딱인 것 같은걸? 바사니오는 우정을 중요시하니까. 둘이 같이 힘내자.”

그렇게 나나와 쥰나는 서로 함께 오디션 연습을 계속했고 마침내 오디션 당일이 왔다. 서로 합을 잘 맞춘 덕일까 쥰나는 마야와 클로딘, 카렌과 히카리등 쟁쟁한 라이버들을 제치고 나나와 함께 오디션 주역 자리를 따냈다. 포셔에 감정이입도 잘 되었기에 자신의 이상에 어느 정도 도달하기까지 했으므로 쥰나는 공연 개막 일주일 전 부모님에게 성에 차지는 않지만 그간 했었던 역할 설명을 적은 편지와 영상 그리고 이번 공연 초대장을 보냈다. 부모님이 오시든 오지 않으시든 자신이 만족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지만 부모님에게 사과를 받고 만족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다.

“정녕 자비를 베풀 생각이 없는가? 그렇다면 좋다. 증서의 내용대로 집행해도 된다. 단, 증서에는 살 1파운드만이 적혀 있으니 피는 단 한 방울도 흘려서는 아니 될 거야.”
“뭐하는 건가? 어서 증서대로 계약을 이행하래도. 그러나 증서 내용과 달리 살이 1파운드가 아니거나 피를 흘릴 시 자네는 사형일세. 재산은 당연히 몰수이고.”
“포기하려는 건가? 좋다. 하지만 아직 할 말이 남아있다. 너는 베니스 사람이 아닌 이방인이지. 베니스의 법은 이방인이 베니스 사람의 생명을 위협할 시 위협한 사람의 재산의 절반은 위협 당한 시민에게 가고 나머지는 국고로 환수한다. 위협한 사람의 생명은 재판장이 판단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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