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개용 회지

사요츠구 어떤 고백

2020.02.22 백합 온리전 사요츠구 앤솔로지 파트 백업


가벼운 옷을 입은 건 오랜만이었다. 사요는 느리게 몸을 뒤틀어보았다. 잘못된 것을 입은 마냥 불편했다. 거추장스럽게 관절마다 감싸진 가죽 레더도, 묵직한 무게도 느껴지지 않았는데 그랬다. 꼭 자기 자신이 평화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았다. 
우스운 일이었다. 평화를 위해 검을 들고 피에 젖어왔으면서, 막상 잠시 주어진 휴식을 견디지 못한다. 건틀렛을 끼지 않은 맨손이 낯설다. 여기저기 배긴 굳은살이 조금씩 손가락의 형태를 뒤틀기 시작하는 중이었다. 어떻게 봐 줘도 흉한 모양새다. 아마 저의 모든 것이 이 손과 같겠지. 사요는 자조적으로 손을 몇 번 쥐었다 펴 보았다. 아무런 방해 없이 가볍게 움직이는 관절의 감각이 생소하다. 고개를 살짝 틀자 바람이 불었다. 어느새 등을 덮을 만큼 자란 머리카락이 부드럽게 흔들렸다.

그리 크지 않은 마을이다. 언제, 얼마나 오랜만에 돌아오던지 간에 변함이 없는 풍경이었다. 이곳만큼은 피바람 부는 전쟁에 휩쓸리지 않았다. 마지막까지 그러길 바라며 사요가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바람에 저 멀리서 풍차가 느릿하게 돌아갔다. 들리지 않는 방아의 박자에 맞추어 희미하게 곡식 냄새가 났다. 걸음을 내딛으니 그보다 짙은 풀내음이 잔잔히 사요를 맞이하였다. 저 나름대로 널은 곡창지대를 지나면 성문이다. 그 안에 옹기종기 모인 집들이 있고, 디딜 틈 없는 시장이 있고……. 약간의 언덕을 올라간다면 성당이 하나 있다. 사요는 바짝 마른 입술을 조금 축였다.

 

이렇게 단출한 옷차림으로 그를 보러 가는 것은 처음이었다. 차라리 갑옷을 바리바리 껴입는 게 나았을까. 적어도 반듯하게는 보이겠지. 하지만 그건 목적과 맞지 않는 일이었다. 사요는 다리를 건너기 전 몇 번이나 물속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살펴보았다. 질끈 묶고만 다녔던 머리를 풀어 내렸고, 얇은 가죽조끼와 바지 차림인 자신은 생소하다. 시장을 그냥 지나치질 못하고 사버린 작은 선물을 들고 있는 것도 어색했다. 빈손으로 오지 않으면 돌려보내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상대 때문에, 대륙을 돌아다니면서 하나씩 늘어난 선물들은 꺼내지도 못 했는데. 이건 또 어떻게 숨겨야할지 모르겠다. 사요는 한숨을 푹 쉬고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발걸음은 무거우면서도 어딘가 가벼웠다. 모순적이었으나 실제로 그랬다.

남은 길은 눈을 감고도 걸을 수 있겠노라고 사요는 생각했다. 물론 전혀 그러지 않았다. 지금부터의 풍경이, 그에게는 너무나도 소중했으니까. 사요가 고개를 들었다. 막 미사가 끝난 모양이었다. 우르르 나오는 사람들과, 그 사이에 옅게 둘러싸인 신부가 보였다. 뒤이어 나오는 사제 몇 명이 요란스레 튀어나오는 아이들을 따라가고 있었다. 은종이 청아한 소리를 내며 울린다. 시선을 맞추고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웃어주던 사제 한 명이 제 쪽을 보고 몸을 일으켰다.

“아, 사요씨!”

상당히 떨어진 거리에서도 상대는 자신을 곧잘 찾아낸다. 이전에 한 번 물어봤던 적이 있다. 어떻게 저가 올 것을 알았는지, 그리고 어떻게 저를 가장 먼저 찾아낼 수 있는지에 대해. 그 때 들은 대답을 떠올린 사요의 귓가가 살짝 달아올랐다.

“오랜만입니다, 하자와씨.”

 

준비를 미리 해 두었어야 하는데, 죄송해요. 츠구미는 연신 미안하다는 듯 사요를 바라보면서도 맞잡은 손에 힘을 풀진 않았다. 덕분에 사요는 괜찮다는 말을 할 타이밍을 벌써 세 번은 놓친 기분이었다. 츠구미를 따라 들어온 성당의 내부를 찬찬히 둘러본다. 사람이 막 빠져나간 건물 안은 조용했다. 막 정오를 가로지르는 햇살이 스테인글라스를 비추고 있었다. 화려하고 경건한 색으로 물들어간다. 색이 츠구미와 자신 아래로 소리 없이 떨어져 내리는 것 같았다. 사요는 괜히 시선을 피했다. 건너건너 들었던 신의 교리니 뭐니 하는 것이 귓가에 맴도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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